송 오름[송악산] 북쪽에 알 오름 세 개가 동서로 뻗어 있습니다. 송 오름의 알 오름은 크게 세 개가 있는데, 동쪽 것을 동알 오름이라 하고, 서쪽 것을 섯알 오름이라 하고, 가운데 것을 셋 알 오름이라 합니다. 섯알 오름 초입에는 대나무를 엮어 만든 9m 높이의 평화를 상징하는 대형 조형물 파랑새가 있습니다. 

섯알오름은 예로부터 자그마하고 낮아서 ‘알 오름’, ‘알 오롬’으로 부르고 섯알오름 꼭대기에는 일제 강점기에 설치한 고사포 진지가 있고, 그 남쪽 기슭에는 제주 4·3 사건의 아픔을 간직한 학살터가 있습니다.

섯알오름 서쪽에는 일제 강점기에 이용했던 비행장터가 있고, 일제가 파서 이용했던 벙커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반인과 관광객이 역사 교육의 일환으로 자주 찾는 곳 중 하나입니다.

사건 개요

1948년 발생한 잔혹한 4.3 사건이 끝날 무렵인 1950년 6월 25일 남침전쟁이 발발하자 내무부 치안국은 당일 오후 2시 요시찰인 및 형무소 경비 강화, 6.29일 불순분자 구속. 9월 30일 구금자 처리 등의 내용을 전문으로 각 경찰국에 지시함에 따라 모슬포 경찰서 관내에서는 예비검속이란 미명 하에 344명을 강제 구인하여 관리해 오다 전황이 위난에 처하자 계엄사령부에 송치된 252명을 제주시 정뜨르 비행장과 대정읍 섯알오름 일본군 탄약고 폭파 시 형성된 물웅덩이에서 정부군에 의해 집단학살 후 암매장한 사건.

예비검속

모슬포 경찰서 관내 각 지서에서는 1950년 6월과 7월에 무고한 농민, 공무원, 마을 유지, 부녀자, 학생 등 344명을 구인하여 모슬포 절간 창고와 한림수협 창고 및 무릉 지서에서 분산수용, 경찰의 감호 하에 가족과의 면회를 허용하고 지병자의 병 보속을 시행하는 등 유화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사찰계장의 주관하에 자의적 판단에 따라 4등급으로 분류된 살생부를 작성하여 만약의 사태에 대비.

집단학살과 암매장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으로 서울을 떠난 정부는 최종 피난처를 제주도로 잠정 결정하여 계엄사령부에 송치된 252명 중 61명이 동년 7월 16일 정부군에 인계된 후 20명은 섯알오름에서 학살하고 나머지 41명은 행방불명 상태인 가운데 동년 8월 20일 세 곳의 구금자를 순차에 따라 학살장소로 이송. 아래 사진은 희생자 명단 입니다.

이송하는 과정에 자택에 있던 대정면 사무소 공무원  6명을 학살장소로 무단 강제 압송할 때 황천길에 고무신을 벗어던져 족적을 알리며 섯알오름 탄약 고터에 이르자 앞에 이송된 한림수협 창고와 무릉 지서에 구금되었던 69여 명은 폭파 된 탄약고 남사면에서 모슬포 전갈 창고에 구금되었던 130여 명은 물웅덩이에서 모슬포 주둔 정부군에 의해 집단 학살. 

집단 학살 후 시신을 가족에게 인도하지 않고 암매장하였으며 그 비인도적인 만행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는 한편 군과 경찰에 의한 경비를 강화.

1950년 7월 16일 41명을 집단 학살한 가해자들의 함구령으로 희생자들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산방산 앞바다 수장설등으로 억측이 난무하여 60여 년 동안 망연자실하던 차 2007년 11월 27일 정뜨르 비행장 민간인 학살장소에서 발굴한 유해의 DNA 검사 결과 신원이 확인됨으로써 행방불명된 전원이 동일 장소에서 학살된 것으로 추정.

아직도 신원확인을 못한 수많은 유가족들은 하루속히 DNA 검사가 이루어지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고 명예회복을 위한 소송도 진행 중입니다. 70여 년 전에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으로 제주에는 아직도 가슴 아프게 살아가고 계시는 어르신들이 있다는 사실이 매우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이들에게도 4.3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희생자들을 추모 하고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다크 투어리즘을 함께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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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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